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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전쟁 8년 전쟁 유럽의 전쟁 고대 로마 프랑스의 역사동복 2020. 3. 4. 18:33
겨울이 끝난 뒤 카이사르는 자신의 휘하에서 군사 경험을 쌓은 바 있었던 안토니우스를 호민관에 입후보시켜 당선시켰다. 그 뒤 임기 후 집정관 출마를 생각한 카이사르는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루비콘 이북의 이탈리아 도시를 방문한다. 카이사르가 이탈리아에 도착한 것은 갈리아 총독 부임한 뒤 처음있는 일로 로마인들은 갈리아 제패라는 놀라운 업적을 이룩한 카이사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영하였다. 그가 가는 모든 도로와 문은 아름답게 장식하였고 그가 가는 곳곳마다 로마 시민은 아이들과 함께 그를 환영하였다. 그가 도착한 도시마다 제물을 바치며 신에게 감사하는 의식을 거행하였고 그의 거처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벌였다. 카이사르는 이렇게 순회를 한 뒤 자신의 군대를 갈리아의 트리베리족 영토[42]에 집결시킨 뒤 그곳으로 돌아가 전군을 사열하였다. 그 뒤 자신의 부관 라비에누스[43]를 이탈리아에 파견하여 계속 선거운동을 하게 하였다. 이때 폼페이우스 측에서 라비에누스에게 접근하였고 라비에누스는 뜻 밖에도 폼페이우스에게로 넘어간다. 라비에누스가 폼페이우스의 클리엔테스였으므로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파트리아, 클리엔테스 관계는 정치적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였으므로 라비에누스가 절대적으로 따라야했던 관계는 아니었다. 가령 마리우스의 경우 자신의 파트리아였던 메텔루스[44]를 맹비난하면서 집정관에 당선된바 있었다. 라비에누스가 폼페이우스에게 넘어간 것은 이러한 관계에 얽매였기보단 그의 정치적인 입장이 원로원파와 같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령 그의 나이는 당시 50대 중반으로 체제 고수라는 원로원파의 입장을 지지하기에 적합한 나이었다.
카이사르는 호민관 중 당시 로마에서 유망한 젊은 정치가로 손꼽혔던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의 빚을 모두 탕감해주어 그를 매수하고 원로원에게 맞서게 하였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총독 신분과 군사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집정관에 출마하길 원했고 이를 쿠리오를 통해 원로원에 관철하고자 하였다. 원로원은 카이사르가 베르킨게토릭스를 격파한 겨울, 집정관이었던 폼페이우스와 협력하여 새로운 법안을 제출한바 있었다. 1. 총독이 루비콘 강을 군대와 넘을 경우 반역으로 규정한다. 2. 부재중 입후보는 금지되며 공직에 출마할 경우 반드시 로마 시내로 들어와 후보 등록을 해야한다.
위의 법안은 집정관 출마를 노린 카이사르를 노린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카이사르는 집정관에 출마하기 위해선 총독직을 내려놓아야했다. 그 이유는 총독은 로마 시내로 들어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 민간인의 신분으로 집정관 출마를 한 뒤 집정관 투표까지 기간이 있는데 그동안 카이사르는 원로원측으로부터 고발당할 경우 정치생명이 끝나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에서 군단을 마음대로 편성하고 속주에서 군단을 모집하고 총독의 관할 밖의 지역인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 지역을 원로원의 허락없이 공격 등 월권 행동을 한 바 있었다. 3. 카이사르는 군대 없이 루비콘 강을 건너는 순간 군단 지휘권을 내려놓게 되는데 이탈리아 내에 원로원이 파르티아 원정 명목으로 편성해 놓은 군대가 사실상 폼페이우스 지휘하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군단에 대해 카이사르는 염려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카이사르는 원로원에게 부재 중 출마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것을 원로원이 강경하게 거부하자 호민관을 통해 민회에 법안을 가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원로원은 폼페이우스가 동원한 옛 퇴역병들을 민회에 출석시켜 훼방놓는 한편 크라수스의 복수를 명목으로 파르티아 원정을 하겠다고 공표한 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에게 군단병을 1개 군단씩 차출하겠다고 선포하였다. 이때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게 빌린 군단을 내놓겠다고 답하였고 카이사르는 2개 군단을 울며 겨자먹기로 원로원에게 내놓는다. 이 2개 군단은 집정관에게 인도된 뒤 로마 근교에 머물고 있었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충성스러운 13군단과 함께 남하한 뒤 원로원 측에게 최종적으로 서신을 보낸다. 이 서신에서 카이사르는 자신이 갈리아 제패로 로마에 엄청난 영광을 안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부당함을 언급한 뒤, 원로원이 원한다면 자신이 군대를 해산하겠노라고 선포하였다. 단 이렇게 되려면 폼페이우스의 군단도 같이 해산해야하며, 둘이 군대를 해산함으로써 로마는 전쟁의 위협에서 제거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뒤 원로원에게 군대 없는 총독의 신분으로 입후보하여, 자신의 신분의 안전함이 보장된 상태에서 집정관에 출마한다면 이는 모두에게 바람직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카이사르에게 있어 파멸을 피할 수 있는 상태에서의 최대한의 양보였다. 그러나 원로원은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넘어가면서 로마는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자신에게 등을 돌린 갈리아로부터 기병을 모집할 수 없게 되자 카이사르는 게르만족을 대상으로 용병을 모집하고 속주민들로부터 모집한 22개 대대로 하여금 속주를 방어케 하고 세콰니족의 영토를 향해갔다. 이렇게 한 이유는 세콰니족은 로마 속주와 인접하였으므로 이곳을 점령한 뒤 속주의 지원을 받으며 다시 갈리아를 공격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이때 베르킨게토릭스는 각 부족에게서 병력을 공출할 것을 요구하였고 따라서 상당한 대군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 병력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그는 이때 갑자기 그 동안의 초토화 작전을 버리고 카이사르의 로마군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부관들에게 말하길 로마군이 군수품을 수송하는 지금이 바로 공격하기 적합한 때이며 로마군은 군수품을 지키기 위해 뿔뿔히 흩어질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로마군은 이미 7년의 무수한 전투로 싸움에 상당히 익숙해졌으므로 급작스러운 상황에도 대처능력이 뛰어났고 카이사르가 또한 우수한 장군이었으므로 이러한 돌발적인 공격에도 잘 대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카이사르의 병력은 로마 군단병만 10개 군단에 달했는데 그들이 모두 장기간의 전투로 단련된 군인들임을 감안한다면 베르킨게토릭스가 전투를 건 것은 상당히 무모한 결정이었다. 카이사르가 훗날 폼페이우스를 격파하였을 때 그는 같은 군단병들을 단 8개 군단을 동원하였고 이것도 그나마 정원을 크게 밑도는 2만 2천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베르킨게토릭스가 맞딱뜨린 로마군은 10개 군단에 정원 수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폼페이우스가 상대한 카이사르 군의 두배에 가까운 전력을 상대로 전투를 건 셈이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기병 특유의 빠른 기동력으로 포위작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에 이러한 전술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마군의 경우 조직적이면서도 유동적인 분대의 기동이 가능하였으므로 포위 전술에도 재빠른 원진을 쳐서 대응하는게 가능하였다. 또한 당시 카이사르가 처한 상황은 이전 6년에 걸친 갈리아 지역을 모두 포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상당히 절박한 때였다. 그가 가진 볼모는 하이두이족의 배신으로 모두 잃은 상황이었으며 점령하고 휘하에 넣은 부족들도 모두 배신한 상황이었다. 카이사르가 속주의 지원을 받으면서 갈리아로 다시 진격한들 베르킨게토릭스가 기존에 했던 대로 회전을 피하면서 보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나가면 그가 남은 임기인 1년 반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도 이것을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는 당시 자결을 생각하였다고 하였다.[39]
그런데 베르킨게토릭스는 친히 자신의 대군을 이끌고 카이사르 군단의 정면으로 꼬라박은 것이었다. 이것은 카이사르에게는 엄청난 횡재였고 베르킨게토릭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던 것이다. 물론 베르킨게토릭스는 갈리아 사람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고, 나름 승산도 보여서 싸웠겠지만... 뒤이어 벌어진 전투에서 베르킨게토릭스는 군대를 세부분으로 나눠 로마군에게 돌격하였다. 로마군도 즉시 세부분으로 나누어 대응하였다. 계속된 전투에서 로마군의 우익이 갈리아군의 좌익을 격파하고 오른쪽 언덕을 점거한 뒤 베르킨게토릭스가 있는 보병부대를 향해 돌격하였다. 베르킨게토릭스가 달아나자 갈리아군 전원이 등을 돌려 달아났고 로마군은 이들을 추격하여 마음껏 살육하였다. 베르킨게토릭스는 황급히 달아나면서 눈에 띈 근처의 도시인 알레시아로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굳게 닫았다. 카이사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며 그는 모든 군단병을 동원하여 알레시아를 겹겹히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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